이색 만남
조향사 정미순
오, 그대는 향기로운 사람
전문)오늘날 향수는 귀족이나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가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필수품이 됐다. 특히 감성이 중시되는 요즘, 향기를 만드는 조향사의 역할은 날이 갈수록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 조향사라 할 수 있는 갈리마드 퍼퓸 플래버 스쿨의 정미순 원장을 만나본다.
고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숱한 남성들을 유혹할 수 있었던 것은 미모가 출중하게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재치 있고 세련된 화술과 그녀만의 독특한 ‘향기’ 덕분이라는 얘기가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말린 아이리스, 몰약, 육계 등을 포도주에 넣어 추출한 다음 송진과 벌꿀을 첨가해서 만든 카이피(Kyphi)라는 향료를 애용했다. 이처럼 향료, 향수는 인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치품으로서 역사가 깊다.
특히 ‘감성의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 향기와 관련된 산업은 갈수록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 향기 산업의 중심에 있는 직업이 바로 조향사다. 조향사란 천연 향에 화학적인 합성 향을 첨가해 한층 더 강력하고 인상적인 향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갈리마드 퍼퓸 플래버 스쿨의 정미순 원장은 우리나라에서 다소 낯설었던 조향사의 직업 세계를 열심히 개척해 왔다.
조향사라는 직업에 처음 흥미를 느끼고 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시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처음 조향사라는 직업을 알게 된 건 미국 화장품 회사인 에스티로더의 창립자인 에스티 로더 여사의 전기를 읽으면서 부터였습니다. 나도 그분처럼 조향을 배워 조향사가 되어 저 자신의 브랜드 제품을 만들어 보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죠.
조향사가 되기 위해 어떠한 공부와 노력을 하셨나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일본 동경에 있는 미야 조향스쿨에서 3년간 조향 공부를 했습니다. 당시 그곳 조향 학원의 교장 선생님께서 저를 많이 지도해주시고 꿈을 키워주셨어요. 또한 저는 프랑스 갈리마드의 조향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갈리마드는 270년 오랜 전통을 지닌 향수 회사로 오랜 조향 노하우를 갖고 있습니다. 이 회사의 시스템을 들여와 설립한 저희 회사는 조향사를 육성하는 일뿐만 아니라 향수 제작, 컨설팅, 기획, 향을 이용한 소품 개발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펼치고 있습니다.
조향사가 되면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며, 직업의 향후 전망은 어떠합니까.
국내에서 향수를 만드는 조향사들은 대부분 화장품 회사 기술 연구팀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조향사는 향장 향(Fragrance)을 다루는 퍼퓨머와 식품 향(Flavor)을 만드는 플래버리스트로 구분됩니다.
향장 향은 향수부터 기포, 색조 화장품, 샴푸, 비누, 세제 등에 적용됩니다. 식품 향은 음료, 과자, 라면, 치약, 담배, 의약품에 사용되는 것으로서 상품의 품질과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향료 기술자는 조향사, 관능평가사(Evaluator), 상품개발사(Applicator)를 시작으로 향수 개발, 향장품과 생활용품 개발, 향료의 품질 관리 등의 직종에서 일하게 되며 화장품산업과 식품산업 전반에서 폭 넓게 활약할 수 있습니다.
특히 21세기는 후각, 시각 등 감성적 요소가 시장에 미치는 비중이 커지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조향사가 점점 더 큰 주목을 받고 있으며 매우 유망한 직종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조향사로 일하면서 또는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가장 보람됐던 순간은 머릿속에 생각했던 이미지가 향으로 그대로 표현되었을 때지요. 그리고 제가 만든 향수가 일반 대중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을 때랍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만든 향이 마음 들지 않아 수없이 조향 작업을 반복해야 할 때였어요.(웃음)
조향사로서 직업병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향을 하도 많이 맡다 보니 모든 향에 민감해서 가끔은 주변 향기 때문에 피곤할 때가 있어요. 향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하는데 습관적으로 모든 향기에 열려 있어서 그게 잘 안 되네요.(웃음)
봄과 어울리는, 또는 최근 유행하거나 인기를 끌고 있는 향수에 대해 추천을 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봄에는 상큼하고 신선한 꽃향기인 그린 플로럴(Green Floral) 계열의 향이 잘 어울리는데, 젊은 층일수록 그린 계열, 플로럴 계열 향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향수는 강도가 강하지 않고 저의 체취와도 잘 어울리는 플라워리 머스키(Flowery Musky)와 알데하이드(Aldehyde) 계열의 향수입니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조향 학원에서 후학 인재양성을 계속 하고 싶고, 청소년들의 후각에 대한 관심을 키워주기 위한 조향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든지, 향수박물관과 같은 후각 문화 예술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정미순 원장은 조향사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조향사는 화려한 직업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과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고 한다. 자신도 조향 공부를 한 지 12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왜 그 긴 시간이 필요했는지 깨달았다며, 이 세계를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보람과 성취가 있다는 것을 덧붙이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글 | 신삼후 기자
사진 및 자료제공 | 갈리마드 퍼퓸 플래버 스쿨 02-554-6290